최근 들어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도파민의 사전적 의미는 신경전달물질로 성취감과 보상감, 쾌락을 느끼게 해 주어 인체를 흥분시켜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해 준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쓰이는 도파민은 주로 흥분과 쾌락과 동일어로 쓰이는 것 같다. 인류의 삶에서 쾌락은 죄악으로 여기고 절제와 신앙의 삶이 추앙되던 시기도 있었다.
애나 렘키 박사는 책에서 쾌락은 고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쾌락과 고통은 지렛대로 연결되어 쾌락으로 무게의 추가 내려가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지렛대의 반대편에 고통의 추를 추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쾌락의 끝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 알코올로 인한 쾌락은 지속될 수 없고 그 끝에는 숙취의 고통이 지속된다. 문제는 우리의 뇌는 쾌락에 내성이 생겨 한번 익숙해진 쾌락은 더 큰 자극이 주어져야 쾌락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더 큰 쾌락만큼 더 큰 고통이 수반된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다시 한번 더 큰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서 중독에 이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의 대상을 가지고 그 욕망의 쾌락을 추구한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그 욕망의 방향도 바뀌게 되었다. 성취를 위한 보상 체계로 작용하던 도파민은 인고의 시간없이 쾌락만을 추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즉흥적 쾌락을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고 돈만 있으면 쉽게 쾌락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쾌락도 소비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쾌락도 부익부빈익빈이 생기게 되었다.
이미 도파민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어 보인다. 마약과 도박, 알코올 중독과 같이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 하는 중독은 예방이 중요하지만 탄수화물 중독, SNS 중독, 워크홀릭과 같은 중독은 문제가 되는 경계의 기준이 애매하다. 그래서 누구나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아니면 이미 우리 사회는 중독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우리는 중독에 빠진 뇌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물리적 구속을 통해 중독 대상과 거리를 둬야 하며 고통을 마주 보면서 중독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본인의 중독 상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주변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중독자를 도와주기 위한 포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특별하지 않은 방법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당연한 솔루션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을까?
책의 표지 에도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라고 적혀 있듯 우리는 중독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건강한 쾌락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그 균형을 맞추어 가야 한다. 인류는 어찌 보면 욕망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중독은 몰입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해답을 찾을 것이고 길게 보면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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